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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가끔 나는 사진작가로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몇날 며칠을 짜증과 막걸리로 보내곤 한다.

20여년을 지리산 만 필름에 담아 왔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공허감은 더 커가기만 한다. 몇 해 전부터 여러가지 작업들을 해보고 있다. 지리산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부터 바꿔 본다. 산정에서만 바라보았던 지리산의 모습에서 산골짜기 마을의 스산함과 텃밭의 쾌쾌한  두엄 냄새를 함께 느껴본다.


누구나 오랫동안 열심히 작업하면 할 수 있는 작품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전무 후무한 독창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온 나의 작업 또한 그 준비과정 이었다 해도 허언은 아니다.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깊이 있는 노력과 고뇌가 충분히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작가들과 작품들이 모여 문화의 한 분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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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봄날 아침 노고단에서 바라본 지리산


억겁의 세월동안 지리산과 함께한 자연과 수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생존하며 적응하고 인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독특한 삶의 가치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리산문화” 이다. 지리산문화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듯하다.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그 가치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 또한 사회의 진화과정 중 하나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일반적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각예술 분야의 초현실적인 표현, 극단적이고 혐오스럽게 느껴질 수 도 있는 현대 공연예술의 성향, 현란하고 거대해지는 도시의 건축문화, 이국적 분위기에 대한 무한한 동경 등이 높은 가치로 인정받기도 하는 것 들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 지향점 이라면 지리산문화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기는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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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로 지붕을 올린 뾰쪽한 모습의 초가는 지리산 전통가옥 형태인 샛집이다.


내가 제주도와 지리산에 처음으로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거기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만일 서울 근처에서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만 그곳에 있었다면 나는 그 곳들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있고 독특한 지형과 기후로 그 곳만의 문화가 독창적으로 잘 전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육지에 사는 사람들의 꿈이 제주도 여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바람은 큰 호텔들을 짓게 했고 예쁜 펜션들을 불러들였다. 급기야 중국의 대규모 자본들이 초대형 숙박과 위락 시설을 계획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오히려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가 현대적 편의주의에 가려져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지리산은 히말라야처럼 높지도, 금강산처럼 빼어나지도 못하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처럼 특출 나거나, 서울의 고궁들 보다 화려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희귀한 수목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특이한 지형으로 신비로운 볼거리를 제공 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을 동경하고 지리산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틀림없이 무언가 있기는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리산은 명성에 비해 아직 그리 번잡하지는 않다. 엄청난 자본들에 의해 공장과 택지들이 대규모로 조성되지도 않았고 초대형 위락시설과 골프장들은 아직 깊은 골짜기 까지는 점령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지리산의 매력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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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고원 비전마을 진입로의 소나무 숲


반면에 여기저기서 배고파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지역의 정치인 들이나 관료들은 댐을 건설하고,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큰 호텔을 지으면 잘먹고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자본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상황에선 참 어려운 일들이다.


발상의 전환은 어떨까?


화려하고 거대한 호텔과 위락시설의 건설 노력 보다는 지리산만의 주거문화를 복원한 산촌 민속마을을 만들어 보는 것,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보다는 있는 길이나 잘 관리하여 겨울에도 지리산을 잘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 댐을 건설해 경기를 부양 하느니 훼손된 옛 역사문화를 발굴 복원하여 지리산의 뿌리를 되찾는 것..... 적은 자본으로 독창적인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아닐까? 지리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은 “지리산 다운 것” 이다.


서울 다운 것으로 서울과 경쟁할 수 없고 설악산 다운 것으로 설악산과 경쟁 할 수 없다. 지리산을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 지리산 다운 것이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이다. 지리산 다운 것들을 찾고 개발하는 일은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리산문화를 잘 발전시키는 것이 잘먹고 잘사는데도 효과적인 방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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