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면 석정 모정의 장기판)
금지면(金池面)은 기지방(機池坊)과 금안방(金岸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이 면(面)으로 바뀌었고, 금안면이 금지면의 중심이 되었다. 남원군(南原郡)지역으로 금안부곡(金岸部曲)이 있어 금안향면(金岸鄕面)이라 했는데 창활(昌活), 내기(內基), 택촌(宅村), 신기(新基), 하귀(下貴), 상귀(上貴), 석전(石田) 등 7개 리(里)를 관할했는데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통폐합때 기지면(機池面)의 고룡(古龍), 옹정(甕井), 호산(狐山), 입암(笠岩), 서촌(書村), 매촌(梅村), 방촌(芳村) 등 7개 리(里)와 두동면(豆洞面)의 임촌(荏村), 상신(上新), 도촌(島村)의 각 일부와 주포면(周浦面)의 제천리(諸川里) 일부를 병합하여 금안과 기지의 이름을 따서 금지면(金池面)이라 하고 옹정(甕井), 입암(笠岩), 서매(書梅), 방촌(芳村), 창산(昌山), 택내(宅內), 신월(新月), 상귀(上貴), 귀석(貴石) 등 9개 리(里)로 개편하고, 면사무소를 창산리에 두었다. 1919년 창산리에 위치한 면 청사가 화재로 전소 되어 다시 지을때 지금의 옹정리로 옮겼다. 또 1935년 3월 1일 행정구획 개편에 따라 두동면(豆洞面)의 상신리 (上新里)와 하도리(下島里)가 금지면에 편입하여 12개 리(里)를 관할하게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금지면이 되어 11개 법정리, 19개 행정리, 2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고리봉의 유래는 해발 60m의 저지대인 금지평야에 우뚝 솟아오른 험하고 절벽단애로 이루어져 있으며, 요천강변쪽 암벽에는 소금배를 매어둘 쇠고리를 매어단 자국이 있다고 하는데 이 쇠고리를 매달았다해서 고리환자를 써서 이름이 불려지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요천강의 수심이 낮아져 배가 드나들 수 없지만, 1백여년전 까지만 해도 소금을 싣은 배가 경남 하동에서 구례와 곡성의 섬진강을 거쳐 남원성 동쪽 오수정(五樹亭)에 닻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의 이름은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 시내를 관 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전하는 고리봉은 조망도 좋지만 산세가 뛰어난 산이다. 동서 양쪽 사면은 거대한 바위 병풍을 연상케 할 만큼 웅장한 산세를 과시하고, 능선은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부드러운 육산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번갈아 이어져 산행의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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